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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세월호특집

세월호 293번째 희생자, 70일만에 부모에게 돌아온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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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News1


70일만에 돌아온 아이. 4층 중앙통로, 언제든 "탈출하라" 한 마디면 빠져나올 수 있었던 그 곳. 집 떠나는 아이에게 아빠가 엄마 몰래 쥐어 준 용돈 5만원을 손에 꼬옥 쥐었을 그 아이. 이제 따뜻한 곳으로 잘 가.


70일간 팽목항 지킨 아버지, 드디어 딸을 만났다

[세월호 참사]293번째 희생자 단원고 윤민지양, 드디어 가족 품으로


"아빠가 다 이겨낼 테니까 제발 나와라. 너 보려고 아빠가 다른 아이들 얼굴 끝까지 다 봤어. 내 딸 보는 게 소원이고… 이럴 줄 알았음 널 안 보냈지, 인마. 얼굴 아니면 뼈다귀라도 보고 싶다고. 아빤 머리가 백지 상태야. 너만 나오면 다 해결될 것 같은데… 왜 안 나와. 우리 딸 미안하다."


진도 팽목항 방파제 위에서 사고해역을 바라보며 실종자 이름을 세 번씩 불렀던 지난달 14일 새벽, 유독 눈에 띄는 아버지가 있었다. 홀로 무릎을 꿇고 딸에게 기도하듯 쌓였던 말들을 끝없이 읊조린 이 아버지는 다른 실종자 가족들의 눈시울마저 적셨다.


아버지의 기도는 70일 만에 이뤄졌다.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24일 새벽 1시3분쯤 세월호 4층 중앙통로에서 구명동의를 착용하지 않은 여성 희생자 1명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16일 만의 발견소식. DNA 확인 결과 안산 단원고 2반 윤민지양(17·여)으로 밝혀졌다.


윤양의 부모는 사고 직후부터 팽목항을 떠나지 않은 '팽목항 지킴이'로 유명하다. 함께 동고동락했던 가족들이 주검을 안고 떠나고 실내체육관으로 옮길 때도 '집나간 아이 집에서 기다리듯' 맨 처음 터를 잡은 팽목항 천막을 떠나지 못했다. 쾌적한 조립식 주택이 마련됐을 때도 '아이는 찬 바다에 있는데 편히 있을 수 없다'며 이동을 꺼렸다. 팽목항에서는 수시로 바다를 보며 딸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


윤양은 올해 53세인 아버지가 늦장가를 가서 낳은 첫째 딸이다. 윤양은 어렸을 때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아파 초등학교 5학년 때 큰 수술을 했지만, 완치된 후 중학생 때부터는 장녀로서 아빠와 엄마, 동생을 잘 챙겼다.


아버지에게 윤양은 유달리 남다른 딸이었다. 술 좋아하는 아버지가 속 아프다고 하면 말없이 죽도 바로 끓여다준 효녀였다. "엄마가 엄청 질투했어요. 아빠만 챙긴다고. 아빠를 끔찍이 생각해준 딸이에요."


아버지는 수학여행 가기 전날 윤양에게 5만원 용돈을 줬다. '아빠가 줬다고 말하지 말고 숨겨놓으라'고 했지만 엄마한테 바로 알릴 정도로 착했다. 딸은 사고 전날 밤 8시에 전화해 "안개 때문에 늦게 떠난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래 잘 갔다 와 우리 딸"이라고 말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그때 내리라고 하지 못한 걸 내내 후회했다.


70일간 아버지는 딸을 만나기 위해 수많은 시신을 확인했다. 부부가 맞벌이를 해 딸이 수학여행날 무슨 옷을 입고 갔는지 못 본 윤양 아버지는 사망자 종이에서 긴머리에 키가 일치하기만 하면 '혹시나 내 딸일까' 시신 확인소로 달려갔다.


'시신 1구 수습. 여자 293번째. 신장 165~170cm. 상의: 긴팔 라운드 티, 상표 OO, 흰색바탕 빨강검정 가로줄무늬, 하의: 검은색 청바지, 상표 OOO'


24일 새벽, 아버지는 드디어 딸을 만났다. "옷을 못 봤는데 나중에 친구들 통해서 알아냈거든요." 긴 기다림에 건강이 급속히 나빠져 링거를 달고 살던 윤양 부모는 70일 만에 안산 집으로 돌아갔다. "일단 딸을 찾아서 올라오니 마음은 편해요." 어머니가 70일 만에 처음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24일 오후 7시 기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사망자는 293명, 실종자는 11명이다.[머니투데이 진도, 박소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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