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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기황후, 방영 전부터 역사 왜곡이다 뭐다 말들이 많고, 지금도 논란 거리이다. 시청률 잘 나오는 유명 드라마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해석에 따라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다. 운명에 의해 내쳐진 머나먼 타국 땅에서 여장부로 기개 있게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자유지만, 역사에서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라는 사실만은 정확히 알고 넘어 가자.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미 여러 역사적인 사실들을 충분히 검토하고, 극의 방향을 잡았을 때, 이 정도 논란은 예상 가능했을 것 같은데, 논란이 가중 되니, 뒤 늦게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라고 변명식으로 가는 건 아니라고 본다. 고려의 주권과 중국 측으로부터의 간섭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였고, 그만큼 민감한 사안인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임에도 말이다.

 

여담이지만, 사이트의 기황후 드라마 설명 글에서 대원제국 이라는 표현이나 가장 아름다운 같은 홍보 문구를 쓴 것도 상당히 무개념적이지 않나 생각된다. 역사적 인물과 배경을 그대로 차용하면서, 왕유라는 가상의 인물을 껴 놓고는, 실제 역사와는 달라도 많이 다른 허구다 라는 것은 너무 허울 좋은 합리화가 아닐까?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보여 달라는 얘기가 아니라, 역사 드라마로서 기본적 개념을 흔들어 버리면, 지금 처럼 논란의 회오리에 휘말리는 결과는 당연한 일인 것이다. 하필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 뉴라이트 사관 등 불편한 일들이 많은 이 시기에, 우리가 TV로 대하는 우리의 역사물 조차 이런 식으로 흐른다는 건 마음 편한 일은 아니지 않나 싶다.

 

[기황후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

 

기황후(奇皇后). 1315(?)~1369. 기승냥. 원나라 순제(혜종)의 황후(보현숙성황후). 고려 무신 기홍영의 증손녀이자 고려 고종의 사위인 기온의 종손녀. 아버지는 기자오이며, 원나라에 바쳐지는 공녀 중의 한 사람. 2명의 언니와 5명의 오빠(기식, 기철, 기원, 기주, 기륜)가 있었고 기식이 일찍 죽어 기철이 장남 역할.

 

1,333년, 공녀로 원나라로 건너갔고, 불교 신자였던 그녀는 부처에게 기도를 올리다 만난 고려 출신 환관 고용보의 주선으로 황궁의 궁녀가 되고, 혜종의 총애를 얻어 후궁, 곧 이어 귀빈이 됨. 자신을 괴롭히던 제2황후(타나시리)를 역모로 몰아 폐위시키며 제2황후 자리를 얻었고, 제1황후(바얀후투그)가 죽자 제1황후로 등극. 제2황후 시절부터 이미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었고, 제1황후가 되면서 원나라는 기황후의 시대가 됨.

 

제2황후 시절 혜종의 총애로 친정아버지, 할아버지, 증조부에게 왕(王) 직위가 주어지고 어머니에게도 대부인 작위가 주어짐. 기철은 원나라의 관직과 함께 고려의 정승(덕성부원군)으로 임명.

 

원나라 내의 반대세력을 몰아 내고 고려인 출신 환관과 유민, 유학생을 등용하여 세력을 형성하고 자신의 친위대와 정치세력으로 활용하고 종내에는 군사력까지 장악함.

 

공녀 시절의 고초를 겪어 굶는 이들을 위해 곡식을 내고, 굶어 죽은 이를 위해 장사를 지내주는 한 때 선정을 배풀었다고 전해짐(1. 이 부분은 이미 근거 없는 낭설이고. 오히려 공물량이 더 늘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바로 잡습니다. 2016.10).

 

황후가 되는 시점은 원나라의 내정 간섭이 심해져서, 원나라의 승인이 없으면 고려 왕도 되지 못하는 시대 상황이었고, 결국 고려는 원나라의 속국을 면치 못하고 있었음. 그녀가 황후가 되자 고려가 원나라에 합병이 되는 것은 면하였으나, 원나라에 대한 고려 왕실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기철을 덕성부원군으로 옹립하게 됨. 공민왕이 왕의 지위를 내정 받은 것이 사실은 기철이 천거한 것. 이 때부터 기철을 비롯한 친원파와 권세가는 기황후의 세력을 등에 업고 권세를 누림.

 

1,356년 공민왕은 원나라가 약해진 틈을 타(고려에서 원나라로 파병했던 군사들로부터 정보를 얻음. 이 파병군에 이성계가 있었음), 기철 등의 기황후 일족과 친원파를 죽이게 되는데, 이에 격분한 기황후는 공민왕을 폐위하려고 공민왕의 삼촌인 덕흥군을 왕으로 내세우며 1만의 군사를 보내 고려 정벌을 감행하였으나 최영, 이성계가 이끄는 고려군에 참패함.

 

1,368년 주원장의 25만 명나라 대군에 밀려 북경을 내어 주고, 지금의 내몽골 자치구 방면인 응창으로 내몰린 뒤 결국 포로가 되어 1,369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짐.

 

경기도 연천군에 기황후 묘가 존재하고 있으나(동국여지지) 한국전쟁으로 비석과 석물이 훼손되어 보존처리가 되지 않고 있다고 함.

 

그녀가 공녀 출신 첫 후비(后妃)는 아니다. 고려 출신의 여성이 궁녀가 되어 후비에 이른 이로는 원 세조 쿠빌라이의 총애를 받은 이씨(李氏), 인종 때의 달마홀도가 있었음.

 

[호의적 의의 - 위키백과의 시각]

 

원나라의 황후가 되면서 80년간의 공녀 징발을 막았음. 친정 나라 고려의 국력을 키우기 위해 재정지원을 함(제주도의 초지와 군마).

 

결과적으로 기황후가 권력을 잡으면서 고려가 원나라에의 복속(입성론: 원나라의 1개 성으로 들어가자는 주장)이 면해졌다는 의견.(근거 없음. 위 1)과 같은 이유로 바로잡습니다. 2016.10)


2013년 당시 필자가 본 글을 쓸 때에 비하여 관련 기사와 온라인 상의 견해들이 빈발(아마도 각계의 비판과 지적들이 활발했었지 않았을까요?)하여. 당시의 위키백과 게제물의 시각 중 일부의 긍정적인 부분이, 현재에 와서 그 의미가 상당히 퇴색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댓글 주심에 감사 드리며, 당시의 본문 글을 수정하는 것 보다는 코멘트를 달아서 기록을 남겨 두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되어 이렇게 써 둡니다.


- Barracuda 2016.9 -


여러가지 핑계로 뒤늦게 오류를 바로잡게 되어 죄송합니다.


- Barracuda 2016.10 -

 


[부정적 의의 - 고려사절요, 엔하위키의 시각]

 

권력을 잡은 기철, 기원 등은 기황후의 세를 등에 없고 사리 사욕을 채우고(함부로 권력을 행사하여 남의 노비와 토지를 빼앗고, 기분에 따라 관리를 임명하는 등), 기황후는 고려에 내정 간섭을 하며 가족들이 패악을 부리게 내버려 두었음.

 

드라마 기황후의 왕유는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이며, 당시의 충혜왕은 고려사절요 25권에 의하면 부왕의 후처인 수비 권씨와 간통, 부왕 후처인 경화공주를 강간, 내시 전자유의 집에 행차하여 그의 아내 이씨를 강간하고, 기타 양반집의 아낙들과 간통하는 등 악행을 저질렀다고 함.

 

[관련 글]

2013/11/20 - [The World/Hot Issues] - 기황후 시청률 고공행진과 막장 논란 - 역사의식과 시청률 지상주의


- Barracud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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