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집에서 티비를 봅니다. 수구 나팔수 언론들이 틀어대는 저가 찌라시 방송들에 식상해 있기 때문에 드라마나 영화 채널 아니면 JTBC <썰전>, <마녀사냥>이나 TVN의 <SNL>을 때때로 보는데요. 그나마 SNL은 섹시 코드와 세태 풍자가 섞여 있어서 흥미 위주로 보는 편이었는데 이제 더 안보게 되는 군요. 말하자면 섹스만 남고 풍자 해학은 없다는 게 이유겠네요.


여담이지만, 갈수록 실망스러운 눈치보기와 팩트 주위를 맴돌기만하는 이빨털기로 <썰전> 도 이제 한 물 간 듯 싶습니다. 아니 처음부터 흥미 위주로 강용석[각주:1]과 허지웅이라는 인물 채택의 한계를 안고 시작된 것일 뿐, "어라 쬐금은 독특한데?" 라는 기대심리에 우리 스스로 최면을 건 것은 아닐까 합니다.


어쨌든, <썰전>과 <마녀사냥>에서 요즘 허지웅이라는 사람이 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나 봅니다. 많은 여성분들이 매력있어 한다길래 한 번 눈여겨 봅니다. 그를 좋아 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네요. '시크함'과 '지적인 귀여움' 이랍니다. 듣고 보니 드립 치는 센스나 성시경과 대비되면서도 잘 맞는 모습에 "저 친구 괸찮은가봐"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독특한 매력남'으로 대세가 된 허지웅에 대해 헤집어 보면


사람이란 게 누군가에 관심이 가면 알아보게 되지요. 발로 뛰는 기자는 아니기 때문에, 어느 한 사람을 알아 보는 가장 손쉽고 빠른 방법은 바로 구글링입니다. 근데 뭐랄까요, 점점 그 사람에 대해 찾아 볼수록 티비에서 보던 그 쿨하고 시크한 매력은 종편의 카메라 속에 비친 겉모습 뿐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실, 특정인을 까기 위한 포스팅은 아니기 때문에, 시청자로서의 공인에 대한 기대와 겉모습, 그리고 그 대상의 진정한 속내는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깔고, 관찰자적 느낌만으로 편하게 글을 써내려갑니다(유일하게 "이승만 영화로 종북좌빨을 타도해보자" 라는 별 쓰잘데기 없는 인간의 헛발질을 보고 빡친 적이 있어서 글을 갈긴 적이 있기는 합니다).


허지웅은 블로거이자 논객, 지나친 한자 수식어와 메타포는 거슬려


혹자는 그가 너무 직설적이다 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기자 출신이기도 하고 한 때 진보신당의 홍보대사였기 때문에 야성을 잘 보여주는 직설화법이 제법 어울립니다. 기자는 내부고발자이자 뭔가를 들춰서 까발리는 야성과 에너지가 있어야 하니까요. 좋습니다.


하지만, 과거 블로그(이글루스)를 보나, 얼마전 옮겨간 블로그(텀블러)를 보나, 생각을 말로 풀어 나갈때의 장황함과 불필요한 한자 변형 수식어, 메타포는 상당히 거슬립니다. 물론, 개인 취향인데요. 너무 밋밋하고 무미건조하게 표현하면 글 솜씨가 모자라 보이겠지만 간결한 표현의 와중에 단 몇개의 결정적 순간의 '한 방' 이 더 전달력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구슬이 너무 알록달록하면 처음에 예뻐서 현혹되지만 금방 질리는 법이니까요.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허지웅의 글은 너무 현학적입니다. 적절한 비유와 영화적 사례를 잘 가져와서 쓰는 부분은 참 부럽고 잘 단련된 능력이지만 말이지요.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잘 난체 한다" 라고 뵐 가능성이 농후한 표현법들이 즐비합니다. 마치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하는 400가지의 방법 중에 중상 이상의 복잡도와 난이도를 가지는 방법을 굳이 쓰는 것처럼 말입니다. 단순히 유클리드 증명법 정도로도 충분히 될 것을 말이지요.


그 개인적인 '재수 없는 느낌'에 두 가지만 덧붙이자면, 이글루스나 텀블러 같은, 남들이 잘 쓰지 않는 특이한 블로그 플랫폼만 골라 쓰는 것도 있군요.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사견입니다만, 묘하게도 관심종자 내지는 실속 없는 몇 몇 주위 인물이 그런 플랫폼을 고수하고 있기도 하네요. 물론 개인의 취향입니다.


허지웅의 새로운 텀블러 블로그는 구미 쪽의 플랫폼 특성상 그런 면(오덕과 짤글질의 본고장)도 있지만, 너무 불친절하고 사이트의 내용을 브라우징하기에 최악입니다. 뭐랄까요... "그냥 니들은 이것만 대충 보고 지나가. 난 이미 유명인 됐으니까" 하는 나쁜 남자, 악동같은 느낌이 듭니다(이게 매력일지도?). 하지만 사실이 아닐겁니다. 글 쓰는 일은 보기보다 어렵고 때로 망설여지거나 쓰다가 확~ 다 날려버리고 새로 써야 하는 나름의 고통이 따르는 작업이니까요. 이거, 한 번 안 좋게 보기 시작하니 별 게 다 마음에 안듭니다.


[참고] 글쓴이의 고백: 사실, 엔지니어 출신이어서 그런지 너무 무미건조하게 글질을 하고 있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화두가 재미 있는/없는 블로그가 아니긴 하지만 고백할 건 고백해야지요. 또 하나, 텀블러는 2013년 Yahoo가 야심차게 인수한 블로그 플랫폼이며, 결코 그 자체가 후지거나 소위 오덕(오타쿠)만 좋아 하는 서비스는 아닙니다. 많은 앞서가려는 블로거가 Yahoo의 텀블러(Tumblr)나 플리거(Flickr) 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허지웅은 극히 개인적인 허무주의자


허지웅은 성향상 진보 논객에 가깝다고 보입니다. 한 때 진보 정당의 홍보대사로 활동했기 때문에 상태가 이상한 사람들로부터 '진보=좌파' 라는 이상한 논리에 의해 빨갱이로 까입니다. 또 고 노무현대통령을 다룬 영화 <변호인>에 대한 블로깅으로 인해 소위 '노빠' 들에게도 까입니다.


네, 맞습니다. 저도 물론 노빠에 해당 하지만 <노사모> 회원은 아닙니다. 그저 소신과 양심을 가지고 낮은 자들의 편에서 열정적으로 살았던 한 인물의 삶과 안타까운(또는 의심스러운) 죽음에 대해 요즘도 곱씹고 있고, 시대를 한탄하고 있는 그야 말로 소시민입니다. '깨시' 라는 말까지도 좋습니다. '깨어 있는 시민' 을 줄인 말이고 다른 진보 인사들도 자주 쓰는 일반화된 말이니까요.


영화 <변호인>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들이 제각각의 이야기를 하지만, 영화를 만든 제작진 자체도 정치적인 몰이로 치부되지 않기 위해서 첫 자막에 쉴드를 치기도 했지요. 이거 마뜩치 않았습니다.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가 다른 방향으로 매도되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 싫었겠지만 말입니다.


"영화는 영화다", "영화는 예술이다" 라는 말도 맞지만, 영화는 '사회 고발' 적인 성격을 충분히 띌 수 있는 훌륭한 홍보 매체이자 상업적 제품이기도 합니다. 영화 <변호인> 은 고 노무현대통령을 기린 영화임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세상에 이런 분이 있었고, 거대 조직의 논리 아래에서 사람이 사람을 해하는 인권에 대한 불의와 부조리에 이렇게 항거하며 살았고, 정의를 구하는 진실된 마음에 생각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동조하기도 했다. 그런데 당신들은 어떻게 살래? 앞으로 우리는 어떤 세상을 기대해야 할까?" 라는 메시지와 질문지를, 송강호의 걸출한 연기와 조력자들의 도움, 감독의 담담한 디렉팅으로 잘 만든 영화입니다. 여기까지가 영화 <변호인> 에 대한 저의 짤막한 소견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허지웅이 쓴 포스팅들을 보면 군데 군데에서 허무주의와 개인적이고 자조적이며 염세적인 쉬운 결론(그간의 정치 상황에 대한 피로감 때문일지도...)이 자주 묻어납니다. 하지만 아시겠지만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거든요. 글을 읽는 독자도 그리 모자라는 사람들은 아니거든요.


일베의 배설적 공격성과 노무현 팬덤의 "바보 인간 노무현, 정치인 또는 개혁가 노무현을 기리는 순수한 마음 또는 그런 인물이 또 나오기를 바라는 열망"을 비빔밥처럼 한 그릇에 섞어 버리는 일방적인 논리는 거북하고 당황스럽습니다. 다시 말하면, 표현에 있어 "배려심이 부족하다" 또는 "섭섭하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순전히 예측이지만, 정치적으로 특정 정당에 대한 기대에 대한 실망감 또는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는 세력과 노선과의 갈등과 원칙 없는 너저분한 모습에 피로감을 느낄지라도 말입니다. 선량한 소시민들이 계몽 내지는 개혁의 의지를 가지고 나름의 정의와 역사적 가치관으로 활동하는 것을 '취미' 나 '일베와 공생' 과 같은 식으로 폄하하는 것은 심하지 않을지?


20:80 법칙으로 본다면 80에 해당하는 부류 중에서도 꼬리칸 정도의 레벨에 있는 사람들이 약간은 맹목적이고 거친 한 부분을 보고 전체를 너무 "성급히 일반화" 하고 재단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들게 되네요. 사람마다 제각각의 방식이 있고 행동의 범위나 표현법이 모두 다르지요. 틀림과 다름의 문제란 말씀입니다.



지식인, 평론가 내지를 글 잘쓰는 블로거로서는 너무 가볍다


  • 예를 들어 영화 <26년>에 대해서 제작 배경의 실제 이야기나 개봉 당시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일방적으로 '최악의 영화' 라고 본인만의 생각을 공공연하게 떠들어 댔던 점. 제작 초기의 의도와 달리 제작사의 개봉 일정 압박이나 감독 이탈 등의 부침이 있었기에 결과물이 졸속이 되었고 혹평을 받았다라고 판단됨.


출처: 허지웅 트위터 글



  • '일베' 와 '노빠' 를 필요에 의한 양립적 공생 논리로 풀어서 노무현 팬덤(그 중 극히 감상적인 일부라고 변명하더라도)을 매도 내지는 격하해 버린 점.


출처: 허지웅 블로그 글


  • "촛불시위는 취미", "국정원 시국 선언은 오버" 라는 일방적이고 단편적인 생각을 대중 앞에 여과 없이 까발린 경박성.


출처: 허지웅 트위터 글


  • 조국, 곽노현, 나꼼수 등에 대해 비판하며 막말을 싸질러 대는 조증 환자적 경박성. 상식적 감정선을 넘어 일방적인 논리의 비약이 심한 듯

출처: 허지웅 트위터 글



이런 행동은, 내가 욕 듣더라도(아니 욕 들음은 이미 예상했을 것이고) 하고 싶은 말은 하겠다라는 야성적인 본능에서 나왔겠지만, 결국은 관심(어그로?) 유발적 경박한 액션으로 까임을 당하게 됩니다. 혹시나 그런 관심을 즐기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나름 당시의 논란거리들에 대해 본인의 블로그에 해명 내지는 변명성 글을 적기는 했지만, 별로 진정성 있어 보이지 않는 점도 저만의 불만입니다. 양비론이다 뭐다 다 좋은데, 대안 없이 본인만의 근거 없는 일방적 몰이짓은 일베류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재미 있는 것은, 이도 저도 아닌 양쪽을 비판하는 글 논리들 덕분에, 허지웅 본인이 얘기 했던 깨시민류도 일베류도 글 일부를 동조하려다가 또 다른 글에서는 까게 되는, 양 진영을 헷갈리게 교란하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 특히 조선일보에서 약삭빠르게 잘 이용해먹었지요(조선일보 기사 ☞ 보기)


기타 허지웅의 '카페 지랄' 같은 논란성 댓글 배틀 등을 보더라도, 진중하지 못한 면 때문에 논란에 휩싸이고 그에 의해 관심 받는 사람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공인' 이기 이전이어서 였을까요? (관련 내용 ☞ 보기)



끝으로 한 마디 더 거들자면, 트위터는 말과 생각을 전달하는 곳이지 '짜증을 토해내거나 배설하는 곳' 이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글질' 이란 자기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지만, 어른들의 부조리에 찌든 대학생(전체를 폄하하는 것은 아님)들이 푸념하듯 막 싸대는 건 아니지요. 살 만큼 살고 겪을 만큼 겪어온 어른이 말입니다. 아무리 살아 오면서 겪었던 사회 전반의 학벌 위주 서열 놀이나 인맥 놀이, 이율배반에 피로감을 느낄지라도 말입니다.



평론가, 논객, 공인 허지웅에 거는 기대


허지웅의 종편 진출가지고 뭐라 하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건 좀 우습죠. 누구도 남의 밥줄 선택에 부젓가락 휘저으며 딴지 걸 자격은 없습니다. 한마디로 개소리 정도로 듣고 흘리면 되지요. 그렇게 따지면 이동형 작가는 MBN 어느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해서 수구 꼴통으로 변절한건가요? ㅎㅎ.


분명히 인간 허지웅은 솔직하고 자기 표현이 강하고 정열적입니다. 성욕이 없다고 하지만, 성욕이 없으면 사는 게 재미 있을 리 없습니다. 성욕은 보통 사람들의 사는 희망의 일부니까요. 오히려 역설적으로 나는 정력이 넘쳐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이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개소리 줄이고 끝으로 글을 맺어 본다면, 누구든 허지웅을 욕할 수 있습니다. 까야 할 때는 까야하고 깨져야 할 때는 깨져야 합니다. 완벽한 사람 없고, 실수하면서 다들 살아갑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마음과 생각이 자라고 배우고 또 깨우치고 점점 더 포용력을 가지게 됩니다(같지 않은 몇 몇 엘리트 코스프레로 일평생을 살아가는 기생충들은 제외하고).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살든 당연하게도 관심 없습니다. 하지만 내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라는 확증을 가지기 전까지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판단과 표현을 한 두 박자 정도 늦춰 주는 '진중함'을 가져 주면 어떨까 합니다.


또, 소위 평론가를 자처하며 그런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평론은 대중의 생각과 연결고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과 동시에 대중의 일부 생각을 폄하하여 논쟁의 불씨를 당기는 위험한 짓은 안됩니다. 평론은 결코 자기 자신의 생각의 독창성과 잘난 체를 일삼는 도구로 전락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제 시청자로서 당부 말씀 하나만 더 드립니다. 날카로운 독설과 명쾌한 표현력을 무기로 세상을 지적하고 비평하되, 마음 속에 있는 따뜻한 온기를 잃지 않는, 인간적 향기를 조금 더 품은 매력남으로 거듭나 주면 더 좋겠습니다. 애정이라기 보다는 아줌마들을 포함한 뭇 여성분들이 호감을 느끼는 셀러브러티에 대한 관심 정도로 보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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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8대 국회의원이던 2010년 당시, 여자 아나운서 대상 성희롱적 발언으로 출당,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은 전력.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병역 비리 의혹제기로 헛발질. 수퍼스타K에 출연 이미지 쇄신을 위한 한수를 시전. 예능프로그램에서 과거의 악명을 역이용하여 "예능과 유명세로 이미지 세탁"을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보이는 인물(하지만 우린 너의 흑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결국 이 사람도 또 하나의 관심병자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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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의 MemoLog. 쉽게 익혀 보는 IT 실습과 개념원리, 코딩 세계의 얕은 맛보기들, 평범한 삶 주변의 현상 그리고 進上, 眞想, 진상들


2013년이 이제 일주일 남았습니다. 기대했던 대통합은 고사하고, '설마 이정도일 줄이야' 싶을 정도로 많은 실망을 겪은 한해였습니다. 하지만 부끄러운 고집불통과 탐욕, 왜곡에 얼룩진 한 해를 훌훌 털어 버리고, 120 년 만의 갑오년, 1894년 갑오개혁(갑오경장)으로부터 두 번의 60 회갑을 맞는 의미 있는 2014년 한 해를 기대해 보려 합니다.


최근 다시 읽고 있는 책 중에 '김홍신' 작가님의 <대발해>라는 10 권짜리 대하소설이 있습니다. 그 분의 올곧은 역사의식을 엿볼 수 있고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뿐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주는 좋은 책입니다. 처음 볼 때와는 또 다른, 깊은 느낌을 가질 수 있어서 더 좋습니다.


김홍신 작가님이 그의 소설 <인생사용설명서>에서 쓴 내용을 인용해 봅니다. 바로 미움과 용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또는 누군가를 아프게 해서 가슴 한 켠이 먹먹하고 아려온다면, 곱씹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용서는 이러저러한 조건 없이 그냥 관대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무조건 용서하는 게 진정한 용서이며 단서가 붙는 건 상대적 용서입니다. 상대가 빌고 반성하고 사죄하기를 기다리는 건 계산된 용서입니다. 용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지 생각하고 계산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은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만 용서하면 진정한 용서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를 용서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용서가 아닙니다.


용서하기 싫은데 상황 때문에 용서했다면 스스로 잘 벼린 칼로 상처를 입히는 것과 같습니다. 법적으로 고소하지 않고 그냥 참기로 했을 뿐입니다. 형식적인 용서로는 행복감을 맛보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을 원망하게 되어 우울증으로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진정한 용서는 영적인 용서입니다. 영적인 용서를 하면 그 과정에서 놀라운 변화를 겪게 됩니다. 참으로 행복하고 편안하고 자유로워집니다.



용서하는 게 억울하고 손해 본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진정한 용서가 아닙니다. 증오의 고통이 얼마나 자신을 망가뜨리는가를 안다면, 정말 용서하기 어렵다면 그냥 잊어버리는 게 내 영혼을 위하는 길입니다.


용서는 강자의 논리입니다. 어린 아이가 내 뺨을 때리면 '이 노옴!' 하고 야단치는 걸로 끝내야지 버릇을 고친다며 어린아이의 팔목을 비틀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이 내 발을 밟고도 그냥 지나치면 불러세워 야단을 치게 마련입니다.


뺨을 때린 어린아이의 행실을 덮어줄 수 있는 건 용서입니다. 그래서 용서하는 사람은 진정한 강자입니다. 육신의 강자는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지만 정신의 강자는 용서로 해결하고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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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의 MemoLog. 쉽게 익혀 보는 IT 실습과 개념원리, 코딩 세계의 얕은 맛보기들, 평범한 삶 주변의 현상 그리고 進上, 眞想, 진상들

 

 

 

다니는 회사에서 4년 동안 개발자를 구하면서 면접을 진행해 왔다. 인사담당자가 아닌, 개발 부서의 수장으로서, 내가 정말로 같이 일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사람을 직접 뽑는 작업이었다. 지금의 20명 남짓의 보석 같은 사람들을 뽑기 위해, 둘러본 이력서와 자소서들만 줄 잡아 수 천건, 프린트 해 놓았던 서류만 수 백 매에 달하고, 지금도 캐비넷 한 켠에 쌓여 있다.

 

국내 IT업계의 어려운 점은 해외의 그것과는 정말 많이 다르다. 경제가 불안하고 사람은 넘쳐 나도, 정작 필요한 한 사람 뽑기가, 제대로 내마음에 드는 사람, 그 중에서도 내 회사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뽑을 수 있는 확률이 체감상 1/200 이나 되려나 모르겠다 싶다. 더군다나 전도는 유망하지만 규모가 작은 소기업이나 중기업이라면 이 확률은 더 내려가지 않을까?

 

 

이제 기업의 면접관 입장에서, 어떤 지원자가 정말로 '뽑고 싶게' 되는지를 한 번 정리해 두려고 한다. 갓 대학을 졸업한 신입사원이든, 이직자이든, 절실한 마음으로 직장을 구하려 하는 분들은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

 

누구나 긴장한다, 긴장을 즐겨라

 

너무 긴장해서 실수 연발인 사람보다는 차분한 사람이 좋다. 하지만 지나치게 차분한 사람은 의욕이 적어보일 수 있다. 차라리, 적당히 긴장감을 보이는 지원자가 더 관심이 간다. 긴장감을 너무 억누르면 멘탈이 무너져서 실수하게 되듯이,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다스리고 동기부여를 해서 가슴이 식지 않도록 마인드컨트롤 연습을 해 두자.

 

니체는 그의 여러 작품과 저서에서 "긴장(tension)이란 에너지이고, 현재에 대비한 미래에의 갈망", 즉 활의 긴장이 가지는 의미를 짚어 냈다. 긴장해서 실수는 할 수 있지만 그 실수로 좌절하지 말고, 나의 팽팽한 긴장감을 잠재력의 뚜껑을 여는 에너지로 사용해 보도록 하자.

 

과욕은 금물이다

 

일찍 도착하는 사람은 좋아하지만 10분 이상 일찍 도착하는 사람은 별로다. 면접관은 거의 다 간부급 이상의 사원이다. 빠듯한 일정 중에서 한 두시간 씩 업무 시간을 쪼개서 참여하는 경우이거나 이미 다른 면접 일정이 있어서 시간을 조정하고 참석하는 것이다. 너무 일찍 도착하면 결례에 속한다는 뜻.

 

시선이 산만하게 흩어지거나 아래로 처진 사람은 별로다. 그렇다고 너무 뚫어지게 면접관을 응시하는 것도 좋은 방식은 아니다. 시선 처리는 편안하게 면접관의 턱이나 목 근처를 보다가 말을 할 때 가끔씩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치는 것이 좋다.

 

내가 가진 것 이상을 보여주려 하지 말라. 과욕은 거부감을 부르고 진실하지 못한 사람으로 매도되기 쉽다. 절도 있고 씩씩한 것은 좋지만, 질문에 매번 앵무새처럼 복창하고 대답하는 사람은 꼭 전화영업원 같은 인상을 풍겨서 면접관이 시간을 잃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경험상, 면접관은 '지나치게 오버하는 사람'을 가장 먼저 떨어뜨리고 싶어 한다. 면접관도 피면접자를 대하면서 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면접관은 되도록 시간과 노력을 최소화하려는 방향으로 면접을 진행하려 할 것이며, 너무 조(躁, Up 된 상태)한 사람과 너무 울(鬱, 침체된 상태)한 사람을 서둘러 제외하려는 경향이 있다.

 

실무 능력의 관점에서 열정을 가져라

 

진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내가 가진 경쟁력이 뭔지, 나만의 장점이 뭔지. 비록 긴장해서 목소리는 떨릴지라도, 자신의 강점을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에게 눈이 한 번 더 간다. 그런 강점이, 지원하는 업종의 직무에서 핵심 역량과 맞아 떨어지도록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java 또는 C++ 프로그래머로서의 핵심 역량은 여러 가지가 있고, 면접관의 생각에 따라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지의 정답은 없지만, 객체지향언어의 개발자로서, 객체지향 언어의 가장 핵심중 하나인, '추상화로 인한 코드의 재사용과 클래스의 파생관계를 이용한 계층적 로직의 설계'에 대해 나만의 실질적 코딩 사례와 실제 클래스 구조 정도는 머리 속에 담아두고, 누가 물어 보면 자다가 일어나서도 거침 없이 튀어나올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부분은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이든, 경력 지원자든 마찬가지 일 것이라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에 언급한 실무적 지식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나의 열정과 목표의식을 담아서 연습하고 실험하고 밤을 새서라도 테스트에 몰입하고 검증해서 진정한 내 실력을 갖추는, 뼈를 깎는 노력을 직접 해 봐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낀 교훈이나 소감을, 친구에게나 거울속의 나에게 설명해 보라. 때로 눈물이 쏟아질지도 모른다. 그 과정을 이겨내고 도전하면, 좋은 소식을 접할 때가 꼭 온다.

 

아주 옛날에 이런 흔한 시구가 유행된 적이 있었다. 지은 이가 어떤 사람이든, 이 문구 만큼은 당시 청소년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내가 하려고 하는 일이, 한 번 내 에너지를 쏟아부어 뭔가를 이루어 내는 데에 꼭 필요한 일이라고 자각한다면, 누가 시키고 등 떠밀지 않아도 하게 되어 있다. 나를 그런 상태로 몰아 넣고, 앞을 향해서 달려나가는 사람이 되자. 그리고 그런 당당한 모습을 면접관에게 보여주자.

 

입사지원자의 기본, 회사 알아보기

 

면접에 떨어지고 낙담하다 보면, 으레 그렇겠지 하면서 등한시 하는 것이 있다. 바로 회사 정보 알아보기. 내가 입사하려는 회사에 대해 최소한 기본 정보는 알아 두자. 수박 겉핧기 식으로 아는체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면접자의 기본 중의 기본 활동이 바로 이것이다. 지원 동기를 발표할 때도, 회사에 대해서 질문을 요구 받을 때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입사지원자 스스로가 자신이 이 회사에 입사하기를 원하고 있는지의 확신을 가지는 데에도 반드시 필요한 일인 것이다.

 

홈페이지 방문을 통해서 회사의 연혁과 특색 있는 과거 이력을, 기사 검색을 통해서 최근 동향을 익혀 놓는 수고 정도는 기본의 기본이다. 틀에 박힌 지원 동기를 앵무새처럼 주절거리기 보다는, 님의 회사가 이런 사회 기여를 해서 감동 받았다거나 어떤 특허를 출원해서 기술적으로 매료 되었으니 그런 회사에서 근무하는 일이 자랑이 될 것이라는 식의 말이 훨씬 더 면접관에게 임팩트를 준다.

 

스펙 걱정 하지 말고, 떨어 졌다고 낙심 말자

 

스펙 쌓기. 요즘 채용 지원자들의 뜨거운 화두이다. 스펙에 연연하는 지원자는 스펙 때문에 떨어진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채용 기준에만 맞는다면, 도전하고 또 도전하자.

 

지하철에서 우연히 들었는데, 면접에 떨어 진 것 같다고 어느 여고생이 친구에게 짜증스럽게 하소연한다. "그 때 왜 그렇게 병X 같이 버벅 거렸는지, 나 참 바보같애. 교수님이 날 어떻게 봤을까?". 그 여학생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그 버벅거림이 긴장에 의한 버벅거림이었는지, 아니면 자신감, 자존감 부족에서의 버벅거림이었는지.

 

면접에 떨어 질 수 있다. 잘 나간다는 모 방송국의 PD들, 영화 감독들, 여러분들의 직장 상사나 교수님들도, 필자도, 심지어 당신을 평가했던 면접관들 마저도. 지금 모든 시청자들이 호감을 가지고 대하는 긍정의 아이콘, 국민 MC 유재석도, 데뷔 초기 이후 아무 특징도 없고 무능력해 보였다던 그도, 긍정적으로 항상 웃는 얼굴로, 연구하고 주변을 감싸 안는 포용력으로 최고의 자리를 10년도 넘게 지키고 있지 않는가?

 

 

누구는 쓰러지고 뒹굴고 낙담하지만, 누구는 쓰러져서 숨을 고르고 다시 일어난다. 누워 있는 것은 자유지만, 다시 몸을 일으켜 도전하는 것은, 당신이 살아 있는 한, 당신이 가능성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한... 그것은 당신의 의무이자, 당신을 믿고 지켜봐 주는 부모님과 어른들, 그리고 친구들에 대한 ... 그리고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책임이자 예의이다.

 

이제, 힘을 내고 달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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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yan의 MemoLog. 쉽게 익혀 보는 IT 실습과 개념원리, 코딩 세계의 얕은 맛보기들, 평범한 삶 주변의 현상 그리고 進上, 眞想, 진상들

 

 

운전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본다. 완벽한 운전이란 있을 수 없지만, 나를 위하고 남을 위하는 가장 안전한 운전은 우리가 노력만 한다면 해 낼 수 있다고 보는데. 한국에서 20년 넘게 운전을 해 오고 있지만, 매번은 아니지만 자주 불쾌하고 불편한 상황을 만나게 된다.

 

그 동안 운전해 오면서 겪은, 우리의 나쁜 운전, 잘못된 교통 문화에 대해 솔직히 나열해 보자.

 

조급한 운전, 무엇에 쫒기는가?

 

최근에 교차로 꼬리 물기, 정지선 미준수에 대해 경찰이 강력하게 단속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원래 하지 말아야 할 짓들을 너무도 많이 하니 이런 일이 생긴다. 문제는, 실제로 바쁜 사람은 거의 없는데 왠지 바쁜 척들을 하는 것 같다. 내 행동 때문에 다른 차들의 진행을 막고, 내 차에 탄 사람들에게마저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게 만드는 불쾌한 상황이 너무 많다.

 

 

신호가 초록색을 바뀌기도 전에 차는 이미 횡단보도를 넘어 교차로로 반 쯤 들어서 있다. 마치 자동차 경주로에서 출발을 대기하는 것처럼 ... 그러다 신호가 바뀌면 총알처럼 튀어 나간다. 외국에서도 간혹 스피드광이나 과시욕이 있는 사람이 이런 짓을 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는 경주에 나서는 차량이 너무 많이 돌아다닌다.

 

무례하고 배려 없는 난폭 운전

 

갑자기 내 차선 앞으로 들어와서 사람 놀라게 해 놓고도 눈도 깜빡 안하는 이상한 운전자. 이미 몇 초 전부터 깜빡이 켜고 차선 변경을 알렸는데도 자기 앞으로만 들어가려면 쌩~ 하고 틈을 안 내어 주려는 이상한 놈. 이미 차의 반이 차선에 진입 했는데도 상향등 번쩍거리며 위협하는 더 이상한 놈들.

 

 

교차로 근처 마지막 차선에서 직각으로 진입해서 남들 차선을 막아서며 좌회전하려는 묘한 두뇌 구조는 또 뭔지. 가끔은, 마지막 차선에서 보행자 횡단보도를 따라 도로를 건너서, 맞은편 도로 끝에서 좌회전 하는, ㄷ자 모양의 유턴을 보기도 했다.

 

밝은 대낮에 졸음 운전자처럼 지그재그 운전을 하는 이상한 차도 있다. 지나치면서 보면 열 중 아홉은 핸드폰 통화나 DMB, 내비를 만지작 거린다. 심지어 마스카라를 붙이거나 눈썹을 그리는 고난도 작업을 하는 여성분들도 더러 있다. 한 마디로 미친 거다.

 

보행자도 운전자도 규칙을 외면한다

 

특히 이면도로 신호등 있는 횡단 보도 앞. 보행 신호를 기다리며 차를 세우고 있으면 뒤에서 재촉한다. 신호 위반해서 그냥 가자는 얘기다. 신호를 지키면 나쁜 놈이 되는 거다. 교차로에서 신호등을 무시하고 좌회전, 직진을 서슴치 않는 운전자들. 심야 교차로에서 신호를 준수하는 택시기사는 본 적이 없다.

 

시속 110 Km 제한속도의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 Km로 달리면 일차선이 아닌 데도 비키라고 신호를 보낸다. 110으로 정속주행 하며 규정대로 달리는 차는 열에 서넛도 안된다. 캐나다나 미국은 학교 근처, 시속 20Km 제한도로에서 21Km 로 달리면 운전 면허 자체가 불합격이다.

 

보행자도 마찬가지다. 차가 오지 않으면 횡단보도 신호등이 붉은 색이어도 핸드폰 보면서 그냥 길을 건넌다. 어린 아이의 손을 잡은 아주머니도 아무렇지 않게 길을 건넌다. 가방 맨 중고등학생들도 아무 거리낌 없이 그냥 길을 건넌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서 있는 내가 더 무안해진다.

 

불친절한 표지판과 도로 표식, 빈발하는 사고에 무감각한 도시 행정

 

일주일에 서너번은 꼭 사고가 나는 도로 근처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늘상 그 도로에는 하얀색 스프레이로 그린 그림이 2-3개는 보인다. 큰 도로와 작은 도로가 만나는 일종의 교차로 모양이지만 작은 도로쪽에서는 좌회전 신호가 없는... 이런 도로가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지금도 사고가 나고 있을 것이다. 큰 도로의 직진 신호가 붉은 색이 되면 너도 나도 4방향으로 좌회전, 유턴을 시도한다. 심지어 경찰차도 일반 운전자와 다를 바 없이 이 엉터리 무질서를 수수방관하고 지나친다.

 

큰 도로, 특히 도심 고속도로에서 갈래길로 빠져 나가려 할 때, 너무 비현실적으로 안내 표지가 그려져 있다. 최소한 운전자 입장에서, 앞으로 언제쯤 빠져나가야 하는지 정확하게 안내 표지판이나 길위에 화살표 표식을 눈에 잘 보이게 해 주어야 하는데, 이런 갈래길이 몇 년째 방치되고 있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중앙선 위의 빛을 반사하는 노란 표시는 원래 기능이 없었는지 어두운 밤에도 보이지 않고, 비만 오면 차선이 보이지 않아 옆차와 거리를 재며 곡예 운전을 해야만 한다.

 

 

택시 횡포

 

택시기사들은, 때로는 카레이서로, 때로는 무례한 고집불통 차선 유지로, 난폭한 위협 운전 차선변경 전문가로, 교차로 맨 끝 차선을 물고 남들 우회전을 못하게 하면서도 앞만 바라보고 모른 체하는 꼴통영감으로 낙인 찍힌지 오래다. 가끔 택시를 타면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면, 마주 인사는 커녕 대꾸도 않고, 앞만 보고 경주를 시작하는 서비스 정신 투철한 분들도 너무 많다. 

 

 

나쁜 운전 문화 아래에 도사리고 있는 우리의 엉터리 정신세계를 나타내는 단어들을 열거해 보자. 조급증과 불안감, 안전불감증, 몰상식, 비인간적 양심불량...

 

이런 나쁜 문화를 비단 한국 운전자들만 가진 것은 아니다. 미국이나 유럽도 운전하면서 쓰레기를 버려서 도로 끝에 쓰레기들이 쌓여 있어서 계도를 하기도 한다. 가끔씩은 불가능한 곳에서 불법 유턴을 하기도 하고, 난폭운전 같은 것들도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이상한 운전자들이 많은 것은 분명히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거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도속도로에서는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으면 차선을 양보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도심이나 저속 구간에서는 깜빡이를 켜면, 열이면 열, 바로 자기 앞을 내어 준다. 내가 상대방 입장이 되어 봤을 때, 곤란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도로에서 누군가 사고를 당하면, 자기 차를 안전하게 멈추고, 담요나 도움이 되는 물건을 가져와서 도울 것이 없는지 물어본다.

우리에게 모자란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면, 답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다. 우리가 조금 더 성숙하고 여유 있는 마음을 가지면 된다. 그런 마음으로 자식들과 후손들 앞에서 행동하고 보여 주면 된다. 그러면 최소한, 우리 다음 세대에서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손가락질 하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지금까지 한국인의 운전 습관에 대해 부정적인 부분을 들춰내 보았다. 쓰고 보니 우리 나라의 운전자 모두가 저열하고 질서 의식이 없거나 몰상식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나 싶다. 물론, 한국의 모든 운전자들이 수준이 낮거나 전반적으로 교양머리가 없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 정도로 우리 민족의 정신 세계가 엉망이라는 얘기는 아니고, 우리 같은 좁은 길에 낮은 수준의 도로 행정과 인프라라면 다른 나라 어느 민족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같은 미국이라도 LA나 샌프란시스코는 질서 의식이 높지만, 뉴욕의 교통 문화는 상당히 거칠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고 말이다.

 

오히려 우리 민족의 끈기와 열정은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가 자주 만나는 무뢰한들이 줄어 들려면, 시대를 주도하는 행동하는 양심들이 먼저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한국의 교통사고 건수나 사망률은 2013년 현재, 아직까지도 OECD 국가중 1위다.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 11.3명, 어린이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 25.6명이라는 오명을 씻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내가 먼저 해 보는 좋은 운전 습관 만들기, 오늘부터라도 하나씩 해보자. 습관은 전파되고 문화가 된다. 문화가 사회를, 나라를 살찌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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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살나무 열매.

 


  10월 어느 날 주말, 씩씩거리며 수락산 자락을 오른다.

  등산로 중턱 즈음에서 만난 흐드러지게 핀 자주색 알맹이들이

  눈을 유혹한다.

  언뜻 수줍고 예쁘기도 하지만

  햇살을 반사하는 건강하고 탄력 있는 보라 빛 열매들이

  무심하게 산길을 지나는 등산객의 눈에 가득 들어 온다.

  자연은 언제나, 세상사에 지친 마음을 힐링해 준다.



꿀풀 과의 갈잎 떨기나무. 종-속-과-목 으로 분류하면 작살나무-작살나무속-꿀풀과(마편초과)-꿀풀목 으로 되어 있다. 한국(원산지), 중국, 일본에서 자라며, 10~11월에 열매를 맺는다. 꽃도 참 예쁘다고 하는데, 꽃말도 있다. 바로 총명. 하지만 아직은 꽃을 본 적이 없다. 공해와 추위, 그늘에서도 잘 자라며 조경수로도 쓰인다.


이 열매는 새들이 즐겨 먹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사람도 먹을 수 있을 듯 해서 찾아보았더니, 그냥 먹으면 배탈을 좀 만날 듯 하다. 배 고파도 참아야 겠네. ^_^.


처음에 녹색이었다가 익으면 점차로 연한 자주빛으로 변하며, 맺힌 열매를 따서 효소나 술을 담궈서 먹을 수 있고, 주로 잎과 뿌리를 채취해서 약으로 쓰는데. 말려서 약차로 먹을 수 있다. 약용으로 쓸 때는 '자주(紫珠)' 라는, 자주색 구슬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고 하는데, 플라보노이드, 탄닌, 칼슘과 마그네슘, 철염이 주성분으로 지혈, 해열, 해독, 항균 작용이 있어서 폐결핵, 편도선염, 호흡기 감염증 등에 좋다고 한다.


작살나무는, 언뜻 보면 좀작살나무와 거의 비슷해 보인다. 열매의 색깔이나, 맺힌 자리도 전문가 아니면 거의 구분이 안되는데, 쉽게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출처: 위키백과, CCL준수).


위 사진을 보면, 작살나무의 잎은 잎사귀 가장자리의 톱니 모양이 잎 전체에 둘러져 있고 열매가 덜 빽빽히 모여 있는 모습과 가지가 위로 자라는 모습이다.


좀작살나무는 잎의 톱니 모양이 중간 쯤부터는 보이지 않고, 나무의 키가 작살나무보다는 작은 편이며, 상대적으로 열매가 포도 송이처럼 제법 덩어리져서 나며, 아래로 처져서 자라는 모습이다. 약용으로 쓸 떄의 효능은 작살나무와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좀작살나무, 덩어리가 커지면 무거워져서 아래로 처지는 걸까?

 

삶에 의미가 더해지면 신중해지고 몸이 낮춰 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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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그분을 그리워 하며]





 저는 고우영 화백님의 그림이 좋았습니다. 조선시대에 풍속화 세계에 김홍도와 신윤복이 있었고, 그림의 필치로 보자면 님의 그것은 신윤복의 그것과 너무 맞 닿아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신윤복의 유명한 그림 중 '기다림', '계변가화', '단오풍정', '정변야화' 와 같은 작품들을 보면, 풍자와 해학, 노골적이거나 또는 숨어 있는 선정적인 느낌이 들어 있지요.


 그처럼, 보다 적나라하면서 노골적이며, 결코 위트를 잃지 않으면서도 때로는 역사적 내용을 자신 만의 시각으로 재해석, 못 가진자, 못 이룬 자의 한과 이미 가진 자 중의 저열한 계층들이 보여주는 일그러진 욕망과 비열한 작태들을 단지 몇 개의 그림 칸에 녹여내었던 분. 필치로 본다면, '거친 듯 하나 펜과 붓 각각의 특징을 살린, 간결하면서도 때로는 역동적이고 정확한 인물 동작과 표정들은 선생님의 독보적인 영역이었다' 라고 알려져 있으십니다.


 저는 화백님의 만화를 보면서 얄팍했던 가슴을 살 찌웠고, 모자란 머리에 생각을 담기 시작했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당시에 유행하던 일본식의 만화 풍에 영향을 받던 화백님들과는 달리, '아 이런 만화도 가능하구나!' 싶을 만큼 때론 감성적이고 때론 충격적이며, 멈추지 않는 귀여운 해학과 익살 섞인 캐릭터, 또 때로는 야설적인 적나라함(성인 대상의 성적 개그 감각)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1960년대 말 ~ 1970년대까지, 당시는 '만화는 불량, 저질의 대명사' 라는 고정관념(박정희 전대통령과 그 이후 군사정권 시절, 군인 내지 중학생 수준의 문화 탄압)에 많은 어른들은 질타하였을 내용이었지만 적어도 우리는 좋아 했습니다. 서슬퍼렇던 시절, 안기부의 사전 검열이랑 칼 앞에 그들이 미쳐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버릴 건 버리고, 끈질기고 교묘하게 녹여 넣은 풍자가 사실은 살아 남아서 하고 싶은 말은 다하고자 했던 고육지책의 아픔이 묻어 있다는 사실...다시 한번 되새겨 보게 되네요.


 이제 여기에 님의 작품들을 나열해 두고, 조금의 여유가 되면 다시 한번 보고 싶네요. 배 깔고 엎드릴 따뜻한 아랫 목이란 것은 이미 사라졌지만, 언젠가 정갈하게 마련된 마당 풀밭 한 켠에 놓인 평상에 걸터 앉아서......



[관련 링크들]


* 고우영 화백님에 대해 알고 싶으면 아래 링크를 따라가보면 됩니다.

다음 블로거 ronaldo님 - <만화가 고우영>

블로거 capcold님 - 진득한 인간사의 해학

한겨레21 - 우리는, 고우영 패밀리입니다



[작품 정보의 정리]


* 순서는 구판(오리지널)의 출판 년도 기준으로 조사한 것이며, 차남 고성언씨가 유작을 컬러로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 이하 본문의 실명에 대해 존칭은 생략합니다.


1. 쥐돌이(1953)

  일명 '떼기만화' 또는 '딱지만화'라고 해서 만화책이 나오기 전에 만화가들이 그려낸 재생용지

  버전 그림책. 종전 후 피난 시절(당시 중학생), 부산 감만동 빈민촌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한

  미키마우스 만화를 본 뜬 16쪽 단행본. 오늘 날 그의 만화 필치의 원형질이라고 알려져 있음.

  아쉽고 슬프게도 해당 작품이 유실되어, 고인 본인 자신조차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얘기가 전해짐.


2. 짱구박사(1958)

  잡지사 '만화학생'에 입사, 모교 이름을 딴 필명 추동성으로 활동, 요절한 형 고일영

  (필명 추동식)의 유작을 이어 받은 작품

  동 시기에 아짱에, 공주 애찌루(1960?) 등 다수 출간.

  전쟁 전 고등학생 신분으로 만화를 창작했던 두 형(상영, 일영)은 종전 후 귀경하여 나란히 서울대

  미대에 다녔으나, 두 분 다 6개월 터울로 작고 하셨다고 전해짐.


          



3. 대야망(1972)월간지 '새소년' 연재

   세트 전5권 출간(어문각)


       


4. 임꺽정(1972)일간스포츠 연재(참조: 고우영과 스포츠신문만화)

  '만화가 고우영'을 있게 한 일대 사건, 1972년 1월1일, 해외(일본과 구미 등) 일간지의 극화방식을

  국내 일간지 최초로 도입.

  만화가 저속한 아동용 오락 그림책에서 엄연한 '장르' 로 인정받게 되는 계기가 되는 작품.

  스포츠신문=연재만화 라는 등식과 스포츠신문 2면 과 같은 표현이 만들어지는 등의

  개인/사회적으로 역사에 남을 일.

  1971년 일간스포츠 판매부수가 2만부, 1972년에 고우영 만화 연재 시작 이후, 1975년 판매부수

  30만부 돌파.


       


5. 수호지(1973) - 일간스포츠 연재

   일간스포츠 연재 중단(중도하차)

    - 사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시절이 어수선한 시기였던 만큼 외압 또는 그에 대한 반발로 추정.

    - 이후 수호지는 후배 만화가인 박대희(정보 없음, 강철수, 이우정과 동시대 인물)가 이어받아

      연재했다고 전해짐.

   1979년 첫 단행본 출간(우석출판사), 이후 6권까지 출간되고 절판(조개가 죽기 직전까지의

   내용만 담음).

   2001년 스포츠투데이에 수호지2000 연재.

   중도 하차 이후 완결판은 근 30년 만인 2005년 경, 자음과모음에서 출간(전20권).


        



6. 꽃네별네, 해동일룡(1974) - 일간스포츠 연재


7. 일지매(1975) - 일간스포츠 연재

   세트 전2권 출간 ... 후일 MBC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의 원판이 됨.

   만화시리즈우표로 제작되기도 함.

   '차가운 미소년' 이라는 이 캐릭터는 삼국지의 공명, 초한지의 한신, 열국지의 공자로

   분하기도 하며, 오늘날 '나쁜 남자'의 모태 격.


      


8. 삼국지(1978~1980) - 일간스포츠 연재

   2001 무삭제 복간판 세트 전10권 출간.

        


9. 미국만유기(1978)


      



10. 서유기(1980) - 일간스포츠 연재


        



11. 열국지(1981) - 일간스포츠 연재

   2004. 자음과모음 출간(전6권)


       


12. 초한지(1984) - 일간스포츠 연재


       



13. 유럽만유기(1985)


14. 흑두건(1986) - 일간스포츠 연재


      


15. 한국고전극화 시리즈(1986~) - 일간스포츠 연재

   가루지기(전2권), 놀부전, 바니주생전, 연산군, 박씨전, 통감투, 오백년, 중국귀신, 거인야사 등.


        


   신 고전열전 시리즈 - 애니북스에서 2008년 복간한 전10권짜리 전집이 있음(일간스포츠 연재 아닌

   예전 작품도 포함).

   -> 아라노와오가녀(1976, 어문각), 흑두건(1986, 일간스포츠), 거북바위, 통감투

       (1987, 일간스포츠), 놀부전, 바니주생전(1988, 일간스포츠)


   * '놀부전'은 당시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던 반전 개념을 그의 독특한 시선으로 그린, 놀부가

     주인공인 현대적 흥부전.

   * '통감투'는 수양대군과 단종의 역사적 사건 내부를 민중적인 시각으로 그림.

   * '바니주생전'은 남녀간 연애 심리를 재미있게 묘사함.

   * '거북바위'는 물과 바람, 불에 관한 판타지.

   * '흑두건'은 조선조 당파싸움을 배경으로한 민중들의 이야기.

   * '아라노와 오가녀'는 고구려 건국 직전의 부족 통합 시대 두 쌍둥이 남매의 모험담.


16. 야한여인 장녹수(1989)

   한국출판문예, 전9권


      


17. 중국만유기(1994)


18. 십팔사략(1994~2004)

   청소년 추천도서인데 18금이었던...

   2012, 컬러판 출간(애니북스, 전10권) - 차남 고성언 채색, 번역되어 중국에도 출간.


       



19. 수호지2000(1998) - 스포츠투데이 연재


20. 수레바퀴(2003) - 2000년에 준비하여 오랜 만력을 담아낸 최고의 유작, 굿데이신문 연재

   자음과모음에서 전집으로 출간(2009년, 전8권).


      


21. 한국만화야사(2005)

   타계 직전까지 집필하시다 세상에 나오지 못한 유작으로 알려져 있음.


22. 구름 속의 아이(2007)

  고인 생전의 자서전으로, 추모 2주기 기념 에세이로 출간(자음과 모음).



[뱀 꼬리들]


* 딱지만화란 바로 이런 것


* 부평의 한국만화박물관에 전시된 옛날만화들, 여기에 고우영기념관이 따로 있음


* 군사정권 시절에 난도질 당했던 작품의 복원작업(딴지일보 무삭제CD본) 들



* 잘못된 정보로 고인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정리한다고 했지만 실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

 수정되어야할 내용이 있다면 부담 없이 지적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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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소줏대, 솔대).


옛 마을 장승 근처에 같이 새워진 모습들을 볼수 있었는데 마을을 지켜주고 하늘과 주민을 연결해 준다고 한다. 사진은 가까운 지인이 만든 솟대들이다. 잘 보면 운치 있고 또 그럴싸해서 가정용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제격이다. 무엇보다도 만든 분의 정성과 따스한 정이 느껴지는 작품이어서, 보고 있으면 정겹고 또 푸근하다.





* 위키백과에 솟대에 대해 자세한 소개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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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1일 설 연휴 끝날, 낙동강 근처의 어느 횟집 마당에서 찍은 '남천 열매' 배불리 먹고 뜰에 나왔는데 따스한 늦겨울 햇살에, 보란듯이 맺힌 예쁜 열매에 절로 눈길이 간다. 가만히 보면 잎사귀 끝에도 빨간 물이 들어 있어서 묘한 조화를 이룬다.



남천촉(南天燭), 남천죽(南天竹) 또는 남천나무라 불리우는 쌍떡잎식물/매자나무과. 원산지는 일본 또는 중국이라는 설. 초봄에 빨간 열매를 맺는다. 한반도 전역에 지천으로 뵈지만, 살면서 언듯 스쳐 지나가면서도 이름도 모른 채 지나쳐 온, 예쁜 열매 덩어리가 특징.

 

 

상록수의 일종으로, 사시사철 변화된 모습으로 열매의 풍부함과 건강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주는 관상용으로도 관심을 받고 있는 나무다. 때로는 어린 순으로 분재를 만들거나, 창가 베란다에 화분으로 가꾸는 경우도 있다. 따뜻한 햇볓을 충분히 받으면 녹색으로만 유지되지만, 자연에서 그대로 자라면 찬 기운에 의해 예쁜 빨간 단풍이 진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는, 강인한 생명력의 관상용 및 약용 식물이다.

 

3월경에 붉은 잎이 낙엽으로 떨어지며, 6~7월에 흰색의 꽃이 핀다(꽃말은 '전화위복'). 보기도 좋고 꽃말도 좋은 느낌이어서 개업이나 집들이의 선물로도 활용된다.

 

가정용으로 키울 때는 공기 정화의 효과를 볼 수 있다. 특히 포름알데히드(1급 발암물질로 담배연기, 바닥재나 벽지, 페인트의 환경 호르몬)를 제거하는 효율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약으로서의 효능도 있고 식용으로도 쓰이는데, 중국에서는 가정의 장식용 식물로 선물용으로도 쓰이지만, 신선이 먹는 식품이라고 해서 쌀에 섞어 밥을 지어 먹으면 흰머리가 검어지고 회춘한다고 하여 성죽(聖竹)이라고도 부른다.

 

남성의 정력에 좋다는 설도 있지만, 몸의 건강에 도움 되기에 그런 것 아닐까? 일본에서는 잎사귀가 해독 기능과 부패방지 기능이 있어, 생선 회 밑의 무채와 함께 깔기도 한다.

 

열매와 잎, 뿌리가 모두 약용으로 쓰일 수 있는데. 뿌리 부분은 해열과 두통을 치료하고, 급성 전염성 간염이나 급성 위장염에 효능이 있다고 하며, 잎은 감기, 기침, 백일해, 안구출혈에 효험이 있고, 즙을 내어 벌에 쏘인데 바르기도 한다. 열매는 천식, 백일해, 감기의 치료용으로 쓰이고, 말려서 물에 달여서 마시기도 한다.

 

가지와 뿌리를 삶아서 황색의 천연 염료로 쓰이기도 하고, 가지를 삶은 물은 숙취와 간장 질환에 좋고, 간암 치료에 이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 <야생화클럽> 이라는 사이트에 가면 더 많은 자연을 담은 사진을 볼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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