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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화드라마 기황후가 11월 19일, 8회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우고 16.9%의 시청률을 보였다고 한다. 심지어 동시간대 타 방송의 드라마보다 2배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등장인물의 기량이나 유명세, 그리고 스탭의 연출력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역사 왜곡이라고 하는 관심사에 의한, 의도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노이즈마케팅 효과도 있을 것이다.

 

요즘 세간에 시끌벅적한 막장[각주:1] 드라마 논란도 결국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저열한 행위들 때문에 지탄 받는 것이고, 드라마 기황후의 그것도 조금 넓은 시각으로 보면 별반 다르지 않은 범주에 드는 듯 하다.

 

물론, 제작진이 많은 열의와 노력으로 야심차게 준비한 작품이고, 출연진들도 열심으로 참여하는 모습은 보기에 어색함 없이 그럴싸하여, 작품성 면에서는 수준 있는 역작이 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 편, 이러한 시청률 고공행진과 이슈 상황에 편승해서 각종 매체의 뉴스들도 칭찬 일색이다. 블로그 글들은 비판이나 비평과 긍정적인 의견들이 반반임에도, 거의 매번 방영전이나 직후에 하나 같이 쏟아져 나오는 뉴스들의 칭찬의 향연은 역사 왜곡이라는 화두를 덮어 눌러서 없앨 정도로 기세 등등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어떻게 보면 같은 업종이라고 후하게 봐주는 느낌도 든다.

 

 

시청률도 좋지만 역사의식은 갖추길

이 쯤 되면, 몇 년 전에도 또 그전에도, 이런 상황에서 슬그머니 머리를 드는 생각은 역시 '시청률의 노예' 나 '시청률 지상주의'라는 것일 게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만은 알고 보자라고 이전 포스팅에서 역사만 나열했지만, 뭔가 석연찮기도 하고 우리 시청자가 너무 우민화되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한 자 더 적기로 한다.

 

드라마도 상품이고, 상품은 인기가 있어야 잘 팔린다. 잘 팔리면 앞 뒤 광고의 단가가 올라가고 기업의 매출액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방송 프로그램이 잘 팔린다는 것을 말해 주는 척도가 바로 시청률이다. 광고료와 TV수신료로 먹고 사는 공영방송이라면 몰라도, 하물며 민방 채널에서라면, 이 시청률에 목을 매는 것은 당연한 일.

 

단순히 내 저작물이나 작품에 대한 관심을 끌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필자도, 기사를 작성하는 기자나, 영업용 홍보 PT를 기획하는 회사원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는 개발자도 누군가의 관심이나 칭찬을 기대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그 저작물 또는 상품이, 내 아이와 그 또래 친구들, 앞날을 기대하는 젊은이들의 역사의식에 잘못된 영향을 줄 수도 있지 않을지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역사 왜곡에 대한 지적들이 심해지자, 제작진이나 출연진들이 나서서 팩션(Faction)이니, '드라마는 허구일 뿐' 이라는 허울 좋은 변명(속된 말로 Dog드립)을 공개적으로 하는 모습도 나온다.

 

예술과 연기 위주로 살아가는 출연진들이야 그렇다 쳐도, 소위 역사물을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연출자가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한마디로 궤변이다. 팩션이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내용에 살을 붙이고 재해석을 하는 Fact 와 Fiction 이 조합된 신조어인데, Fact 에 기반하였다는 것에 더 비중을 두는 것이 역사물인 것이다.

 

만약, '허구에 입각했다' 라는 의도였다면 당연히 판타지라는 표현을 쓰고 역사물이라는 말은 쓰면 안되는 것이다. 단순히 눈가리고 아웅하듯이 폐륜아인 충혜왕 대신에 왕유라는 있지도 않은 가공인물만 끼워 넣는다고 해서 '몇%는 허구이다' 또는 완전 허구이다 라는 것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한 허구인데 역사의 복원은 또 뭔가?

 

혹자는 이를 두고 매국노인 이완용을 독립투사로 묘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 라고 한다. 정도는 다르지만 나름 맞는 말이라고 본다. 기승냥의 여장부다운 기개를 높이 사 주는 것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 역사상 실존 인물들이 고려에 미친, 상식선에서의 부정적인 평가를 무시하고 지나치게 주인공을 미화(여주인공이 참 예쁘기는 하나)하는 부분은 진정 거북하다.

 

 

특정 매체의 표현(예를 들어 '대원제국' 이라는 단어 사용)을 여과 없이 소개 페이지에 사용하는 등의 오로지 시청률을 극대화해서 드라마의 상품성만을 끌어올리기 위해 앞 뒤 없이 달려만 가는 모습에, 이제는 시청자로서 식상함에서 오는 피로감과 불편함을 동시에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닐까? 때로는,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는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아래 이미지는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기획의도>의 문구를 캡처한 것이다. 객관적인 전달자 입장에서 쓴 대원제국이 아니라, '이런 거대한, 위대한 원 제국'의 황후가 된 인물... 이라는 늬앙스가 상당히 거슬린다. 그 대원제국은 고려의 역사에서 내정간섭과 공녀 차출 등으로 우리 민족을 괴롭힌 또 하나의 외세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또 하나, 역사를 복원한다는 표현을 썼는데, 극의 내용이 허구라고 했으면서 그러한 문구는 왜 썼던 것인지, 또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이킨다는 둥의 표현에 대해서도 계속 의문이 남는다. 그냥 사람들 눈을 사로잡기 위한 허울 좋은 추측이고 환상일 뿐이지 않는가? 그러니, 어느 블로거의 '이러다 대일제국이라고도 하겠네' 라는 빈축을 사는 것 아니겠는가?

 

엉터리 역사해석에 역사물이란 단어는 쓰지 말자

 

몇 년 전, 모 방송국의 대박 드라마 <대장금>을 이어, <이산>, <선덕여왕> 그리고 문제의 드라마 <동이>의 경우가 떠오른다. 전작들의 연장선상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역사에 대한 재조명 어쩌구 하면서 의욕적으로 시작한 <동이>. 초기에 장희빈의 모습은 합리적인 인품과 출중한 여장부의 그것이었는데, 나중에 질투에 눈이 먼 일반 아낙 수준으로 변질되어 갔던 이상한 드라마.

 

당초부터 기획의도가 그랬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시청률인지 외압인지, 작가의 생각이 바뀐건지 모를 이상한 무언가에 의해, 주인공인 동이(숙빈 최씨)를 부각시키기 위해 장희빈 같은 역사적 주요 인물의 비범함이 평범함으로 변질 되어 갔던 대목이 떠오른다. 이것은 비범함이 부각이 되지 않는 관점의 변경이 아니라, 변질된 것이다.

 

아마도 스토리가 잘 안풀리자, 역사 왜곡으로부터 자유로와지기 위해 사료가 거의 없는 숙빈 최씨를 위주로 픽션을 감행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 마저도 비판 의식 없이 본 사람도 적지 않을 듯 싶어서 갑갑하다[각주:2].

 

다시 말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 즉, 픽션으로만 봐달라고 하면, 역사물이란 타이틀을 떼고, 실존인물의 이름을 쓰지 말아야 한다. 이는 드라마의 존속과 시청률 유지를 위한 궤변 밖에 안된다고 본다.

 

 

의식 있는 시청자, 소비자 판단

 

가뜩이나 역사 과목이 수능에서 빠져 있어서 역사 의식이 약해진, 우리의 후배와 아이들이 연기자의 인기나 외모, 화려한 영상미와 스타일에만 마음이 팔리고, 정작 의미를 두고 알아야 하는 역사적 인물이나 배경의 의미를 왜곡된 시각으로 인지한다면 말이다 ... 우리 어른들이 실수 하는 것이고, 미래의 주역들의 정신에 그릇된 생각을 심어주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본다.

 

 

어쨌든, 결국 상품의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므로, 소비자는 상품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한다. 다만 부지불식간에 TV의 최면에 의해 눈 앞이 가려지고 판단력이 흐려지지는 않을지 심히 걱정이 되는 것이다.

 

 

오래 전 1998년에 개봉되었던 <트루먼쇼> 라는 걸작 영화를 보면, 가장 후반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모든 것이 밝혀지고, 주인공이 바깥 세상으로 퇴장한 뒤의 장면에서, 영화의 트루먼쇼를 지켜보던 시청자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채널에선 뭘 하지?".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누가 무슨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건, 나는 그냥 채널만 돌리면 그만이라는, '바보상자'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좀 더 세상에 귀를 기울이고 진실을 향해 마음을 여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관련 글]

2013/11/14 - [The World/Hot Issues] - 기황후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 - 드라마 기황후, 알고나 보자


- Barracuda -

 

  1. 원래 탄광노동자의 신성한 삶의 현장을 의미하는데, 별도 포스팅으로 다룰 예정이다. [본문으로]
  2. 드라마를 눈여겨 보았다기 보다는, 조사하다보니 그런 사실이 있었음을 알아낸 것이지, 결코 필자가 예리한 눈을 가진 비평가라는 자랑은 아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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